현대차 불법파견 무혐의 처리에 대한 성명서
검찰이 현대차 불법파견에 “혐의 없음.”처리를 내렸다. 노동부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후 검찰로 이관된 후 검찰은 그동안 “현실과 법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수사를 지연해 왔다. 애초부터 수사의 초점은 현대 자동차 살리기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고백한 셈이다. 결국,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던 검찰은 “판단기준”을 마련해 검찰내부와 관공서에 배포했고, 이 판단기준은 아직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법에 따른 판단 기준이라면,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던 불법파견 노동자들에게 불법파견은 하나의 희망이었다. 이제 검찰의 손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또다시 법의 사각지대로 밀려나게 됐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검찰은 우리 노동자들의 투쟁 앞에선 “현실은 이해하나, 그래도 법이 우선” 따위의 구역질나는 소리를 지껄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무혐의 처리와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공안탄압을 볼 때, 검찰의 판단기준은 법도 현실도 아니었다. 오로지 자본과 권력의 이해관계 하나만이 절대 기준이다. 철저하게 약자에게 등 돌리고 강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검찰이 자본과 권력의 편을 일방적으로 드는데, 노동자들이 어떻게 법을 믿고 지키라는 것인가? 자본이 뭐가 무서워서 법에 따라 행동하겠는가? 오로지 강자를 위해 법이 움직이면 약자는 무서워서 세상 살겠는가?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 했다. 이번 검찰의 불공정한 처사는 우리를 단련시키는 계가 될 것이며, 우리 노동자의 힘으로 부패한 세상에 심판을 내릴 날을 앞당기는 계기로 만들 것이다. 그날 까지 우린 오늘의 일을 비롯해 검경, 법원의 탄압을 하나도 남김없이 기억하고, 노동자의 권리는 투쟁으로만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가슴깊이 새기며 비정규직 철폐 노동해방 쟁취를 위해 투쟁할 것이다.
이하는 검찰의 무지하며 불공정한 수사 결과에 대한 반박
1. 사내하청업체 대표자들의 지위 - 왜 우리는 이들을 바지사장이라 부르는가?
이번 검찰의 무혐의처리의 핵심 내용은 원청 사용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간의 사용종속성을 증명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꼴이다. 결국 자신의 시야만 가려질 분 하늘은 가릴 수 없지만, 검찰은 “봐라 손바닥만 보이지 않는가?”라며 시치미를 떼고 있다.
검찰은 사내하청업체의 대표자들이 인사관리와 작업지시를 하고 있으므로, 사용종속성은 사내하청업체 대표와 비정규직 노동자간에 발생하며, 원청에 의한 직/간접적 노무관리는 사내하청업체와 원청사이의 도급계약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정당한 범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내하청업체 대표자 - 비정규직 노동자, 현대자동차(혹은 현대모비스)- 사내하청업체의 관계를 단절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합하는 형태로, 비유컨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꼴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들의 고용형태가 도급인지 파견인지를 파악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내하청업체 대표자들의 실질적인 지위를 판단하는 것이다.
우선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약 80%의 사내하청업체 대표자들이 현대자동차 출신이라는 점과 이들이 자기 자본으로 업체를 설립한 것이 아니라 현대 자동차의 직/간접적 지원이나 기존 하청업체와의 업무양도를 통해 사내하청업체 대표자들이 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내하청업체들은 원청과의 계약관계와 사업자 등록증만 존재할 뿐 별도의 사무실조차 가지고 있지 않으며, 회사의 자산과 기술 등은 전적으로 현대자동차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업체 사무실의 경우 사내하청노조의 설립 이후 시비 거리를 없애고, 교섭을 회피하기 위하여 현대 자동차 공장 밖에 유령 사무실을 만들어 놓고 있으나, 법원의 공문조차 수령하지 못해 주소보정 명령을 받을 정도로 방치되고 있으며, 실제업무는 여전히 현대 자동차 내에서 수행하고 있다.
사내하청업체에 대한 현대자동차의 절대적 지위는 사내하청업체의 규모를 결정하고 이를 위해 사내하청업체간 비정규직 노동자 이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시를 할 정도이다. 물론 검찰은 다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지시가 아니라 계약 변경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업체 이동은 각각의 자의에 의한 것이다.”라고 말을 하겠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업체 이동은 일자리를 볼모로한 강제적 명령이며, 명령체계의 맨 위에 원청인 현대 자동차가 있다.
이런 불가역적 관계에서 “계약”이란 있을 수 없다. 즉 사업자등록증으로 위장하여 마치 원청과 업체간 계약으로 보일 뿐 사실상 보통의 회사 조직내에서 보이는 업무 명령이나 위임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결국 사내하청업체 대표자들은 사업장등록증을 제외하고 나면, 원청의 관리직이나 마찬가지이다.
고용, 징계 등 인사에 관련된 부분보다 더 심각한 건 생산 부분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출근하면서부터 퇴근까지 철저하게 현대자동차의 통제를 받는다. 현대 자동차가 발급한 보안카드를 소지하지 않으면 아예 출입이 불가능하며, 현대 자동차가 실시하는 “기초질서지키기” 캠페인에 의한 퇴근 시간통제 역시 정규직과 동일하게 받고 있다. 이런 통제는 작업장 안에서 더욱 심해진다.
현대 자동차는 시장의 수요에 맞춰 생산 차종, 부품의 공급 등을 실시간으로 조정하는 이른바 JIT시스템으로 운용되며 이에 따라 모든 조립공정과 부품사들이 원청의 통제하에 이루어진다. 특히 조립공정의 경우 대부분의 공정이 유기적이고, 일방적인 플로우 시스템에 의해 진행된다. 결국 하청업체 대표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 즉 업무의 내용과 과정 전반이 현대자동차의 절대적이며 일방적인 통제 하에 이루어지며, 이 역시 불가역적이다. 물론 현대자동차로부터 지시받지 않은 업무 지시가 사내하청업체대표자 나 반장, 조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것들의 경우도 사내하청업체 대표자의 의지와 경영 행위가 아니라,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에 대해 작업자가 조치를 취하고, 문제점을 개선하고, 후속조치를 취하는 조건 반사적 행동이다. 이 역시 관리직 혹은 숙련된 작업자가 담당하는 분야이다.
또한 각 사내하청업체의 근로조건도 동일한데, 이는 단순히 사내하청업체간 수준이 우연히 같은 것이 아니라, 현대 자동차가 정한 기준으로 임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사내하청업체의 수익 구조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을 중간 착취하는 형태로, 현대자동차가 지급하는 임금에서 현대자동차가 정한 임율에 따라 자신들의 이윤을 공제한 후, 노동자에게 나머지 임금을 지급하는 구조로, 이때 현대자동차가 하청업체에 지급하는 임금에는 4대 보험 비용도 계산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사내하청업체들은 “교섭능력, 지불능력 없음”을 이유로 단체 교섭을 회피하여 왔고, 그나마 올해 처음 맺은 단협의 경우 현대 자동차의 일방적인 비정규직 처우 개선안에서 단 1원도 차이가 없다. 현대 자동차는 사내하청노조 설립과 불법파견 진정을 거치면서, 사내하청업체간 규모 조정을 실시하여 업체의 규모를 비슷하게 맞췄는데, 이는 인원수에 따른 계약금의 차이를 은폐하기 위한 수단이다. 인원수준별 계약금 비교는 비정규직 도입 시기부터 지금까지 다각도로 비교 분석이 가능하다. 만일 검찰이 진정으로 불법파견인지 판단하려 했다면, 가장먼저 수사를 했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애초 불법파견이니 처벌을 해달라 고소를 했고, 노동부가 불법파견이다란 판정을 내린 바 있으니, 파견임을 입증할 수 있는 내용들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이는 사내하청업체들의 수익 구조를 살펴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사내하청업체들의 수익 구조를 살필 수 있는 모든 자료들은 철저하게 은폐되고 있다. 검찰에게 수사권을 법의 이름으로 준 이유는 이런 점들을 규명하라고 준 것이다. 그런데 검찰은 거꾸로 방조, 방기 내지 담합하여 은폐하고 있지 않나 의심이 든다. 그간 오랜 시간에 걸쳐 수사를 진행했으니 이부분에 대한 수사도 이루어졌을 터, 명쾌하고 실 당사자인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참에 해명하는 것이 어떤가? 더 시간을 끌게 되면 그나마 이런 진실조차 사내하청지원 기금이니 하는 허울 좋은 명목의 돈을 지급하고 그렇게 확보된 여유자금으로 인해 은폐될 가능성이 높으며, 곧 현실화 될지도 모르니까.
2. 잘못된 정책을 억지로 합리화하는 불법파견 수사
애초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노동유연화는 국가기관의 핵심정책이었다. 그 와중에 노동자들의 강력한 반발과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희대의 악법인 파견법이 통과됐으며, 그 결과 비정규직화가 엄청나게 진행됐으며, 이는 양극화의 주범이다.
파견법이 통과되던 당시, 파견법이 노동시장 전반을 붕괴시킬 것을 우려하여, 파견가능업종을 명확히 제한하는 규정을 두었으나, 온갖 편법과 불법을 통하여 이 제한은 유명무실화 됐다.
파견이 금지된 제조업 공장인 현대 자동차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파견법을 피하기 위한 편법으로 도급으로 위장하여 사내하청업체들이 생겨났고, 지금은 핵심 공정에서도 비정규직이 일하고 있는 상태이다.
현대 자동차를 비롯해 상당수의 제조업 업체들이 비정규직을 확대시키는 이유는 유연성 확보나 비용 절감이 이유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현실을 살펴보면 이 효과는 미미하거나 잠재되어 있다. 오히려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전혀지지 않은 체 생산을 유지하는 시스템. 즉, 고용하지 않고 사람을 부리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라는 게 더 정확하다.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실 사용자가 사용자성을 부정함으로써, 비정규직은 노동 3권을 박탈당하고 이에 따라 근로조건도 악화된다. 또한 비정규직 정규직을 포위하게 되면서 구조조정의 촉매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쉽게 이야기해 현대 자동차 등이 저지르고 있는 불법파견은 노동 시장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으며, 노동 3권조차 무력화 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현상은 노동자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가벼운 지갑, 빈 통장, 망가지는 몸, 불확실한 미래로 나타난다.
정책의 올바름을 가늠하는 잣대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절대 다수인 노동자의 삶을 이렇게 파괴하는 정책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파견법은 노동 시장 유연화와 안정화의 경계이다. 이미 파견법만으로도 노동시장은 심각하게 불안해지며, 이번에 개악된 비정규직 법안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여파는 공기업이 선두에서 노동자들을 계약해지는 최근의 사례들만 봐도 심각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파견법에서 제조업을 금지한 이유는 제조업 공장의 노동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였고, 그 취지를 살리고자 한다면 당연히 제조업 공장의 비정규직화를 제한하는 것이 검찰 및 관계 부처의 역할일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검찰이 노동부의 기존 결정을 뒤집으면서, 불법파견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은, 노사 관계 및 노동 시장에 대해 아예 무지하거나, 혹은 자본의 입장만 대변한 것이다. 특히 누가 봐도 무리하고 억지스런 이번 무혐의 결정과 검찰의 수사 기준과 불법파견 판단 기준이 철저히 은폐되는 것을 보면, 검찰 스스로가 노동 유연성의 기조를 관철 시키기 위해 현행법을 파괴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명백한 월권 행위이며, 일만오천명 현대 자동차 비정규직 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에게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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